그러니까 그건 딱히 구두를 사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, 사야 했던 것도 아니었다. 회식 자리에서 갑작스레 생긴 발표 일정에 교수님이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다.
“신발은 닳아도 돼요. 근데 싼 티 나는 구두는 말투보다 먼저 보입니다.”
그 말이 괜히 머릿속에 남았다. 그리고 며칠 뒤, 내 폴더에 열려 있던 ‘세일 마지막날’ 쇼핑몰 링크 앞에서 나는 결국 잠깐 머리를 식힌다는 핑계로, 카드를 꺼냈다. 명품 리셀 플랫폼. 이름도 그럴듯했다. “Made Gentle: For Feet That Speak.” 적어도 폰트는 비쌌다.
브랜드명은 평소 백화점에서 접해본 적 없는 라인이었지만, 제품 사진은 흠 잡을 데 없었다. 안창 각인, 박스 패키지, 굽 라인의 마감까지 확실해 보였고, 무엇보다 사이즈가 내 발에 맞는 마지막 한 켤레였다. 페이지 하단에는 실사용자 리뷰라며 인증샷이 열 장 넘게 첨부돼 있었다. 모두 남성 자취방 특유의 구겨진 이불과 책상 조명 아래에서 찍힌 사진들이었다.
다만, 한 가지 낯선 점이 있었다. 결제 페이지에서 일반적인 카드 결제는 안 된다고 했다. 대신 스크롤을 내리면 ‘보증 이체 서비스’라는 메뉴가 있었다. 그게 도대체 뭔지 알 수는 없었지만, 그 아래 적힌 설명은 이랬다.
“고객님의 결제를 중계하는 신뢰보증 시스템입니다. 명의 확인 후 발송을 보장합니다.”
알 수 없지만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말이었다. 이름도 그럴듯했고, 설명은 자주 본 마케팅 문장처럼 매끄러웠다. 사이트 자체가 워낙 정제돼 있어 의심이 묻히는 구조였다.
이체는 금방 끝났고, 확인 문자는 오지 않았다. 배송은 익일 출고라고 돼 있었고, 나는 다음 날까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.
하루가 지났을 때, 마이페이지에서 배송 추적 버튼을 눌렀지만 버튼은 눌리지 않았다. 다시 한 번, 이번에는 다른 브라우저로 시도했지만 같은 결과였다. 오후가 되어서야 버튼은 사라졌고, 그 자리에 “수거 중”이라는 말만이 남았다.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그때였다.
직감은 조용히 발뒤꿈치에 닿는 서늘한 공기처럼 다가왔다. 배송 버튼 하나가 사라졌다고 바로 의심한 건 아니었다. 그런데 그다음 화면에서 이상한 점이 또 나타났다. 이전에 열려 있던 리뷰 이미지들이 모두 안 보였다. 그 자리에 “리뷰 준비 중입니다”라는 단문이 채워져 있었다.
그리고 그날 밤, 결제 이체 증명을 남기기 위해 스크린샷을 정리하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검색을 했다. 사이트 이름, 계좌번호 마지막 네 자리, 상품명.
검색 결과는 많지 않았다. 그 중 가장 위에 있던 사이트가 먹튀검증 사이트 먹튀위크였다.
정확히 같은 계좌번호가 사흘 전에도 신고됐고, 구두가 아닌 백팩 판매 명목으로 돈을 받은 뒤 잠적한 사례가 소개돼 있었다. 리뷰 이미지 중 하나는 내가 봤던 것과 완전히 똑같았다. 그때까지만 해도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건 아니었다. 그런데 다음 날 아침, 사이트 자체가 접속되지 않았다.
도메인이 만료된 상태였다.
구두는 오지 않았고, 계좌도 폐쇄 상태로 확인됐다. 신고는 했지만 이미 입금한 사람 중 하나로 남을 뿐이었다.
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게 너무 부드러웠다. 계좌 정보가 적혀 있는 구조, 사진에 담긴 조명, 불필요할 정도로 정리된 문장들. 아무도 소리 내어 속삭이지 않았지만, 그런 침묵들이 나를 안심시킨 것이었다.
나는 그날 이후로 ‘사이트 구조가 잘 짜인 곳일수록 오히려 한 발 더 멀어져야 한다’는 경계심을 갖게 되었다.
그날 이후, 다시 먹튀위크에 들어가 비슷한 사례들을 몇 개 더 읽었다. 다들 이상하게도 나처럼 ‘설마 내가?’라는 문장으로 시작해, ‘역시 그랬구나’라는 말로 끝나 있었다.
지금도 어디에선가 “보증 이체 서비스”라는 단어를 처음 듣고 안심하는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. 그래서 내 사례도 이렇게 남겨 두려 한다.
보증이라는 말만큼 의심해야 할 건 없다고, 고급스러운 말투가 당신의 발을 보호해 주지는 않는다고.
그 구두를 신었다면 발표를 조금 더 당당하게 했을까? 그건 모른다. 하지만 나는 내 돈이 사라진 순간보다, 내 경계심이 아무 말도 없이 꺼졌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.